2015 <A Quiet room_단음의 화음>
[ In a quiet room ]
성북예술창작터
김지현 박주영 최지연 3인전
2015. 04. 23 - 04. 30
현대인의 일상은 가파른 속도의 풍경 속에 펼쳐진다. 질주하는 풍경의 속도는 일상의 의미를 지각하고 숙고할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속도는 일상의 의미를 손쉽게 축소하고 망각으로 몰아간다. 속도의 변화는 시선의 변화로 이어진다. 풍경을 통과하는 속도가 달라지면 눈에 보이는 풍경 또한 함께 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를 향한 시선을 작품으로 돌려놓는 작가의 창작 행위와, 작품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 역시 삶의 속도를 쫓아 변화한다.
현대인의 시간을 지배하는 원리가 질주하는 속도라면, 압도적인 거대 서사는 현대인의 공간을 점유한다. 물질적으로 축적된 거대 서사가 이루는 스펙타클은 사나운 서치라이트처럼 개인의 일상을 점령하고 시선을 강탈한다. 질주하는 속도와 스펙타클이 지배하는 현대의 시공간에서 개인의 시선과 일상은 반복해서 어긋난다.
현대의 조건은 개인을 그 자신의 일상으로부터 소외한다. 일상의 부재, 혹은 망각이 그 소외의 방식이다. 그러나 비록 삶이 일상을 망각하더라도, 삶은 언제나 일상 속에 자리한다. 삶이 일상으로 이루어진다면 일상은 삶과 같은 무게를 지닌다.
여기 세 명의 작가는, 각자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들을 집요하고 치열하게 관찰한다. 일상을 향한 끈질긴 추적은 뜻밖에도 일상을 넘어선 발견으로 이어진다. 소소한 일상 속 조용한 위기들이 삶의 근간을 뒤흔들고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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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작가는 대상이나 주변 풍경을 흐릿하게 그려서 인간의 중층적 감성을 표현한다. 작가는 지시적 언어처럼 명료하고 직설적인 이미지는 오히려 이미지가 표현하는 인간의 심리 상태를 단순화 시킨다고 보고, 뚜렷하고 확실한 대상보다 주변적이고 사소한 사건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의미의 무게는 선명한 대상보다 차라리 불분명한 풍경 속에 온전히 드러날 수 있다.
작가는 큰 특징이 없는 도로변 풍경이나 일상적인 행위 속의 인물을 명확하지 않게 표현하여 관객이 대상에 더욱 깊게 집중하고 관찰하도록 유도한다. 이를 통해 흔하고 하찮게 보이는 일상에서도 오롯이 드러나는 삶의 의미를 제시한다.
박주영 작가는 일상 속에서 조우하는 평범한 소재들을 그린다. 작가는 인물이나 풍경, 동물, 식물 등의 소재를 통해 스스로 경험한 세계의 면면에 독특한 색채를 부여한다. 소재들 사이에 논리적, 형태적 연관성은 없다. 이들 소재들은 다만 작가 자신의 주관적 세계에서 서로 묶이고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될 따름이다.
끊임없이 무언가 만들고 그리기를 좋아하는 작가는 자신이 발견한 소재들을 매개로 주위 세계를 바라본다. 작가는 단순하고 상징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담담하게 주변의 일상을 기록하고, 소박한 일상 가운데 반짝이는 찰나의 순간을 기록한다.
최지연 작가는 사진을 찍는 순간 작용하는 객관적 분석과 직관 사이에서 의문을 갖는다. 그에 따르면 대상을 응시할 때 우리는 ‘객관’이라는 판단을 확신할 수 없다. 하나의 대상을 바라보는 여럿의 시선은 그들 각각의 경험과 환경, 가치관 등 저마다의 고유한 관점에 의해 구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상의 의미 역시 그것을 향한 시선과 얽혀 있고, 사진에 담긴 대상의 객관에는 시선의 주관이 스미기 마련이다.
이러한 의문은 사진의 속성이 과연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회의로 이어진다. 사진은 사물을 직관적으로 재현한다. 사진의 일차적 기능은 대상을 관념과 추상의 매개 없이 있는 그대로 포착하고 제시한다. 시선을 전적으로 배제한 대상만의 의미 작용이 불가능하다면, 이러한 사진기술의 특징은 오히려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때문에 작가는 선명하고 설명적인 이미지를 오히려 흐리고 모호하게 만든다. 명료한 외양의 옷을 벗은 사물은 시선에 대한 배타적 의미를 주장하지 않는다. 작가의 사진 속에서 대상은 시선과 다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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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세 작가는 모두 일상의 풍경에 주목한다. 각자의 일상을 살피는 이들의 시선은 닮아 있다. 하지만 언뜻 동일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의 시선이 다시 교차할 때, 침묵하던 일상의 풍경이 화음을 빚는다. 이들 작가는 일상을 살피는 살뜰한 시선으로 질주하는 속도와 스펙타클의 틈새에서 가능성의 기회를 헤아린다.
현대는 자신의 속도와 공간 속으로 인간을 끌어당긴다. 인간은 자신의 일상으로부터 소외되고, 소외는 일상의 망각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일상의 망각은 단지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망각된 일상이 단순히 개인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면, 망각된 일체의 것들 역시 개인에게만 속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 전시는 망각의 흔적을 쫓아 일상의 복원을 꾀한다. 절절한 부재를 통해 존재를 증명하는 그 무엇이 개인의 일상을 관통하며 남기는 흔적의 자취를 더듬는다.
- A Quiet Room -